사랑하는 딸에게.
너도 알다시피, 아빠는 참 규칙적인 생활을 좋아해.
(물론 주말에도 매일 새벽 5시반에 일어나시는 친할아버지보다는 덜하지만 😅)
퇴근하고 와서 1시간 반 정도 관심 분야 공부나 독서를 하고,
회사에서 연차를 내도 늦잠 대신 일찍 일어나서 운동하고 책을 읽지.
이렇게 자기만의 루틴을 만들면
절제력도 생기고, 게을러지지 않으며, 보람도 느낄 수 있단다.
다만 루틴만큼 중요한 게 또 하나 있어. 바로 '잘 쉬는 것'이야.
때로는 돌아가는 길이 필요할 때
잠깐 커피 이야기를 해볼까 해.
아빠랑 엄마가 커피를 참 좋아하는거 알지?
우리집에 있는 필립스 자동 커피머신은 엄마, 아빠가 정말 아끼는 거야.
원두를 넣기만 하면 자동으로 그라인딩되고, 기호에 맞게 샷과 물의 양을 조절해줘.
원하는 커피를 아주 균질하게 효율적으로 제조할 수 있지.
균형잡힌 삶을 좋아하는 아빠에게 참 최적화된 머신이란다.
그런데 말이야.
가끔 아빠는 일부러 핸드드립으로 커피를 내린다.
자동머신보다 훨씬 번거로운 일인데도 말이지.
직접 원두를 갈고, 분쇄된 가루를 조심스럽게 드리퍼에 옮기고,
적당한 온도의 물을 천천히, 원을 그리며 부어야 해.
설거지도 몇 배는 더 많아지고.
하지만 이 번거로운 과정에 묘한 매력이 있단다.
그라인더가 돌아가는 소리, 물이 끓는 소리, 커피가 방울방울 떨어지는 소리...
이 모든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머릿속 복잡한 생각들이 자연스럽게 정리돼.

휴식이 필요한 우리 몸이 보내는 신호
딸아.
뭔가에 너무 오랜시간 집중해서 하던게 잘 안되거나,
머리가 답답해질 때가 있을거야.
이때는 몸이 "지금 당장 쉬어야 해"라고 보내는 신호란다.
뇌과학자들이 발견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있어.
우리 뇌에는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라는 부위가 있는데,
이게 바로 멍때릴 때 활성화되는 곳이야.
마치 컴퓨터를 재부팅하는 것처럼, 이 시간 동안 뇌가 스스로를 정리하고 초기화한단다.
그래서 멍때린 후에 오히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막혔던 문제의 해결책이 보이는 거지.
아빠가 핸드드립을 하는 5분이 바로 이런 시간이야.
휴식을 위해 "의도적인 불편함"을 선택한거지.
전하고 싶은 말
20대의 우리 딸은 어떤 것을 하고 있을까?
어떤 것에 집중하느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도 모르겠어.
너도 언젠가는 중요한 일에 막혀서 답답할 때가 올 거야.
시험을 앞두고 머리가 하얗게 될 수도 있고,
직장에서 프로젝트가 꼬여서 스트레스받을 수도 있지.
투자할 때 감정이 앞서서 성급한 판단을 할 수도 있고.
그럴땐 마음 속에 아빠의 핸드드립 커피를 생각해보렴.
여유있게, 심호흡하고, 마음속으로 원두를 차분히 가는거야.
그리고 조금씩 너만의 호흡으로 물을 부어보자.
맛이 좀 쓰면 어떠니?
만드는 과정에서 너가 리프레시 되었다는게 중요한거지.
때론 급할수록 돌아가는 용기,
바쁠수록 멈춰 서는 지혜가 필요하단다.
네가 뭔가 이루기 어려운 과정에 있거나,
감정적으로 치우쳐서 성급한 결정을 내리려고 한다면,
이 글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라.
사랑한다.
아빠가.
때때로 최고의 행동은 행동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때때로 최고의 말은 말하지 않는 것이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아빠가 미래 20세 딸에게 전하는 조언을 담은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인생에서 얻은 경험을 솔직하게 다룰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