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농산물 시장 담당자가 없어서 공석으로 놔뒀는데, 자네가 맡아줘. 자료는 이전 직원이 작성한 게 어느 정도 있으니까 참고해서 알아서 해봐."
아빠가 연구소에 입사하고 몇 개월이 지난 어느 날, 소장님이 말했어.
그때 아빠는 완전 멘탈이 나갔지. '아직 신입이니까, 그냥 선배들 따라서 시장 조사 서포트만 하면 되겠네.' 이런 안일한 생각을 했거든. 그런데 그 "알아서 해봐"가 내 인생의 가장 큰 자양분이 될 줄은 몰랐어.
던져진 바다에서 헤엄치기
농산물 시장이라고 하면 뭔가 주변에 있으니 단순할 것 같지?
너가 아기 때부터 좋아한 옥수수, 밥상에 항상 오르는 쌀...
그런데 막상 담당하니까 완전히 다른 세계더라고. 중국이 콩을 사면 국제 가격이 오르고, 브라질에 가뭄이 들면 커피값이 뛰고… 모든 게 연결되어 있었어.
- 중국이 콩을 대량 수입 → 국제 가격 상승
- 브라질 가뭄 → 커피값 폭등
- 러시아 밀 수출 금지 → 몇 달 후 라면값 상승
처음엔 기존 자료들을 열심히 읽어봤지. 하지만 그냥 읽기만 해서는 소용없었어. 결국엔 내가 직접 논리를 세워서 분석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거든.
문제가 터지면서 배운 것들
얼마 안 있어 큰 일이 생겼지. 업계 구매 담당자들 대상 세미나에서 내년 시장 전망을 발표해야 하는 거야.
아빠는 완전 패닉 상태였어. '내가 뭘 안다고 전망을?'
그때 깨달은 게, 어려운 질문을 받으면 무의식적으로 쉬운 질문으로 바꿔서 답하려고 한다는 거야. "내년 가격이 어떻게 될까?"를 "작년에는 어땠지?"로 바꾸는 식으로 말이야.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방법을 찾아야 했어. 핵심 변수 찾고, 요소들을 분해하고, 데이터로 검증하고…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서 나름의 분석 틀을 만들어갔지.
외운 것 vs 체득한 것의 차이
세미나는 다행히 잘 마무리됐지. 그런데 더 중요한 건, 이런 과정을 통해 나만의 사고 패턴이 생겼다는 거야.
나중에 독서를 하면서 알게 됐는데 로직트리, MECE… 경영학 수업 때 나왔던 개념들이 이상하게 익숙하더라고.
"이거… 내가 해오던 방식이잖아?"
그때 깨달았어. 나는 현장에서 직접 부딪히며 문제를 풀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조적 사고를 몸으로 익히고 있었던 거야. 프레임워크를 "외운 게 아니라, 만들어가고 있었던" 셈이지.
생각해보니 고등학교 수학 시간이 떠오르더라고. 같은 이차방정식을 인수분해로도 풀고, 근의 공식으로도 풀고, 완전제곱으로도 풀어보던 그 훈련 말이야. "한 문제, 여러 접근법"을 자연스럽게 익혔던 거지.
그때는 몰랐는데, 그게 바로 다각적 사고의 기본기였던 거야.
외운 지식: 도구 사용법을 안다
체득한 지식: 언제 어떤 도구가 필요한지 안다
이게 진짜 큰 차이야. 책에서 본 "좋은 방법"과 내가 실패하면서 만든 "나만의 방법" 사이의 간격 말이야.
진짜 성장은 이때 일어났다
가장 큰 변화는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었어.
예전 아빠: "정답이 뭘까?"
지금 아빠: "이 문제의 핵심은 뭘까?"
예전엔 누군가 만들어놓은 답을 찾으려고 했다면, 이제는 문제 자체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려고 하게 된 거지.
복잡한 연결고리들을 추적하다 보니 다른 영역에서도 비슷하게 접근하게 되었어. 회사 일이든, 개인 결정이든, 투자든 "이게 저기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된 거야.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익숙하지 않은 것을 마주했을 때의 자세야. 지금은 전혀 다른 업계에서 일하고 있지만, 비슷한 챌린지가 들어올 때마다 당당히 맞설 수 있게 되었어. 짧은 시간 안에 구조를 파악하고, 핵심을 찾고, 나름의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거지.
"모르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된 거야. 오히려 "어떻게 접근할까?"가 재미있어졌어.
문제에 적극적으로 맞서기

일을 하면 시간에 쫓기다 보니 이런 구조적 접근을 건너뛰기 쉬워. 아빠도 처음엔 그랬고, 지금도 바쁠 때면 가끔 그러거든.
하지만 의식적으로 연습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몸에 배게 될 거야. 프레임워크나 방법론은 외우는 게 아니라 만드는 거야. 실제 문제와 씨름하면서 자연스럽게 체득하는 거지.
- 문제와 직접 마주하기 (피하지 말기)
- 스스로 방법 찾아보기 (바로 답 찾으려 하지 말기)
- 시행착오 겪기 (실패해도 괜찮아)
- 패턴 인식하기 (내 방식 발견하기)
- 다른 영역에 적용해보기 (확장하기)
딸아, 언젠가 너도 "알아서 해봐"라는 말을 들을 거야.
그때 당황하지 마. 그게 바로 진짜 성장이 시작되는 순간이거든.
당연해 보이는 일도 막상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건 쉽지 않아. 하지만 네가 경험하면서 얻은 방식을 믿어봐.
그리고 좋은 방법을 외부에서 찾았다면, 그걸 너꺼로 만들어. 그게 진짜 너만의 무기가 될 테니까.
아빠도 아직 배우고 있어. 새로운 문제가 터질 때마다 말이야.
배움은 경험이고, 다른 모든 것은 단지 정보일 뿐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사랑하는 아빠가.
아빠가 미래 20세 딸에게 전하는 조언을 담은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인생에서 얻은 경험을 솔직하게 다룰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