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두 번이나 같은 실수를 한 이유

읽는 시간 : 4분

사랑하는 딸에게,

아빠가 20대에 가장 바보같았던 순간을 하나 털어놓을게.

아빠는 '한자와 나오키'라는 일본 드라마에 빠져있었어.

은행원이 "정의롭고 따뜻한 돈의 흐름이 세상을 바꾼다"며 부도덕한 상사 및 거대한 기업들과 맞서는 모습이 너무 멋져 보였거든.

한자와 나오키는 아빠에게 금융이라는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 고마운 드라마야.

문제는 그 관심사를 발견한 후에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았다는 거지.

지금 생각해보니 아빠는 완전히 여러 편향의 '완벽한 조합'에 당한 거였어.

이미지 설명
@voti

"내가 본 것이 전부"라는 치명적 착각

첫 번째 함정은 '내가 아는 게 전부'라는 착각이었어.

실제로 아빠는 인턴을 하면서 그 회사를 알아보려고 노력했어. 지점에서 다양한 업무를 보조했고, "이 정도면 현업이 되어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지.

하지만 지점에서 본 것이 막연하게 그 조직의 전부라고 착각했던 거야.

그도 그럴 것이 "지점은 작은 본점이다."라는 말이 첫 출근에 들었던 내용이거든.

회식 문화, 수직적 권위 체계, 의사결정 구조, 실제 영업 현장... 이런 건 팀에 막내 인턴이 있어서 그런지 거의 보지 못했어.

더 웃긴 건 매번 "이번엔 나름의 준비를 더 철저히 했으니까 될 거야"라고 생각했다는 거야.

첫 번째 실패의 원인을 철저히 더 분석했어야 했어. 하지만 시간과 노력을 더 투입해서 필기 시험을 더 잘 보면 해결될 거라고 착각했지.

내가 본 인턴 경험 = 조직의 전체 모습 → 판단 착각의 시작

점수만 올리면 해결될 거라는 착각

아빠는 정말 중요한 질문들을 회피하고 있었어.

  • "내 성격이 이 조직의 체계에 맞을까?"
  • "인턴으로 본 업무가 정규직 업무의 전부일까?"
  • "내가 '배운 지식'이 아니라, 어떤 능력으로 이 기관에 기여할 수 있을까?"

이런 어려운 질문들 대신에 아빠는 쉬운 질문으로 바꿔치기했어.

  • "업무를 할 수 있나?" → 응, 인턴 때 보고 체크했어!
  • "사람들이 부러워하나?" → 모두가 좋게 보는 직장
  • "시험 점수가 높이려면 뭘 더 해야하지?" → 심화 단계를 공부하면 돼!

무의식적으로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답하기 쉬운 질문으로 대신한 거야.

시험 점수를 올리고, 지식을 더 쌓으면 자동으로 그 조직에 맞는 사람이 될 거라고 착각했어. 이게 바로 우리 뇌가 자주 하는 속임수지.

어른들 말 + 친구들 선택 = 절대적 진리?

그때 한국에선 공기업 취업이 정말 인기였어. 주변 어른들도 "안정적이고 좋다"고 했고, 친구들도 다들 그런 곳을 준비하고 있었지. 아빠는 무의식적으로 이 두 힘의 완벽한 조합에 휘둘린 거야.

어른들의 조언(권위) + 또래들의 선택(사회적 증명) = 의심의 여지가 없는 정답

특히 우리나라는 나이와 경험을 중시하는 문화라서 이런 편향이 더 강하게 작동해. "어른들, 선배들이 다 그렇게 말하는데 틀릴 리 없겠지" 하면서 내 판단을 포기하게 돼.

면접장에서 마주친 최악의 데자뷰

두 번째 도전할 때가 정말 웃겼어. 면접장에 들어선 순간 깜짝 놀랐지.

인턴 때 한자와에 대해 질문했던 그 면접관님이 또 앉아 계신 거야.

"한자와 나오키, 이전에 말씀하셔서 저도 재밌게 봤어요. 관심을 갖게 된 계기로는 좋네요. 그런데 한자와 나오키 말고, 당신만의 특색은 뭔가요?"

아빠는 당황하면서도 "음... 저는 한자와처럼 따뜻하고 정의로운 금융의 가치관을..."

"드라마 얘기 말고요. 당신이라는 사람을 보여주세요."

아빠는 또 당황했어. "나?"라는 질문에 드라마 이야기밖에 할 말이 없었거든.

"그럼 구체적인 상황으로 물어볼게요. A기업을 우리가 지금 맡고 있는 거 아시죠? '국민혈세 먹는 하마'라며 압박이 커지고 있습니다. 정책 결정자라면 어떻게 하실래요?"

아빠는 해당 기관 법조문을 인용하며 "XX법 1조 1항에 따라 본연의 의무를 다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어.

지금 생각해보니 면접관은 아빠라는 사람이 어떻게 사고하고 로직을 꾸리는지를 보고 싶었던 것 같아. 아마 이런 답변을 기대했을 거야.

"본연의 업무는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사회적 파장이 있으니 관련 부처와 협력해서 재교육 등을 통해 연쇄 피해를 최소화하는 다각적 검토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아빠는 여전히 '정답만 외우는' 모드에 빠져있었지.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지식 암기로 해결하려고 했던 거야.

앵무새가 아닌 현명한 실무자

금융업에서 규정 준수는 기본 중의 기본이야. 윤리 의식, 정직 - 이런 건 당연히 필요하지.

하지만 그걸 "규정만 달달 외우면 된다"로 이해한 게 아빠의 큰 착각이었어.

진짜 금융기관에서 원하는 건:

  • "왜 이런 규정이 생겼을까?" 이해하는 사고력
  • 복잡한 상황에서 원칙을 어떻게 적용할지 판단력
  • 고객과 기관, 사회 전체를 고려한 균형감각

규칙을 지키되, 그 규칙이 '왜' 존재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걸 나만의 언어로 어떻게 표현할지 생각할 수 있는 사람 말이야.

3개 편향의 완벽한 콤보 어택

돌이켜보니 이 모든 편향들이 한 방향으로 완벽하게 작용했어.

  • 내가 본 것이 전부 → 인턴 경험으로 조직 전반을 안다고 착각
  • 어려운 질문 회피 → "나에게 맞나?"를 "점수가 높나?"로 교체
  • 권위+사회적 증명 → 어른들과 또래들의 선택이 정답이라고 확신

이 세 개가 한꺼번에 작동하니까 멈출 수가 없었던 거야.

이제라도 늦지 않은 진짜 질문법

이 경험으로 아빠가 배운 건, 남들이 뭐라고 하든, 유명한 사람이 뭐라고 하든, 이미 투자한 게 아까워도, 일단 나 자신에게 정직하게 물어보는 거야.

  • 내 성격과 가치관은 정확히 뭘까?
  • 내가 정말 잘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 내가 일할 때 에너지를 얻는 환경은 어떤 곳일까?
  • 내가 진심으로 해결하고 싶은 문제는 뭘까?

면접관이 정말 알고 싶었던 건, "네가 우리 조직과 사회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 였는데, 그 전에 미리 **"너 자신은 누구인가"**를 먼저 알아야 했던 거지.

아빠는 한자와라는 좋은 관심사는 발견했지만, 정작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던 거야.

답이 바로 나오지 않아도 괜찮아. 이런 질문을 계속 하는 것 자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첫걸음이야.

다른 사람의 실수에서 배우는 것이 현명하다. 모든 실수를 직접 경험할 만큼 인생이 길지 않기 때문이다.
— 세네카

사랑하는 아빠가.


아빠가 미래 20세 딸에게 전하는 조언을 담은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인생에서 얻은 경험을 솔직하게 다룰 예정입니다.

#취업#인지편향#자기이해#취업#인지편향#자기이해#취업#인지편향#자기이해#취업#인지편향#자기이해#취업#인지편향#자기이해#취업#인지편향#자기이해

댓글

댓글 로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