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딸에게,
아빠는 스토아 철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좋은 깨달음을 얻었어.
아마 너도 지금까지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왜 똑같은 상황에서도 어떨 때는 괜찮고 어떨 때는 화가 날까?" 궁금했을 거야.
이전에 아빠가 회사에서 겪은 일을 얘기해줄게.
똑같은 상황, 정반대 반응
작년 연봉협상 시즌에 겪은 일이야.
동료가 "나 이번에 7% 올랐어"라고 했을 때, 아빠는 바로 "축하해!"라고 말할 수 있었어. 왜냐하면 그 자체는 동료 입장에서 축하받을 일이지. 그리고 아빠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다른 사람의 연봉 소식보다 내 스스로가 몇 % 더 성장했는지가 더 중요했거든.
그런데 같은 자리에 있던 다른 동료는 이 자랑을 듣고 자기는 더 적게 올라서 불만이었나봐. "왜 나는 5%밖에 안 올랐지? 우리 성과가 비슷한데..."라면서 며칠 동안 불평하더라고.
똑같은 정보였어. 하지만 우리 반응은 완전히 달랐지.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보이지 않는 기준점의 함정
아빠가 깨달은 건, 내가 설정한 기준점이 모든 감정을 좌우한다는 거야.
아빠의 기준점은 "내 자신의 성장"에 맞춰져 있었어. 작년에 어떤 프로젝트를 했고, 어떤 스킬을 배웠고, 어떤 문제를 해결했는지가 더 중요했지. 다른 사람의 연봉은 그냥 그 사람만의 이야기잖아?
그런데 그 동료의 기준점은 "동료들과의 비교"에 맞춰져 있었던 거야. "비슷한 수준인데 왜 나만 적게 받았지?"라는 상대적 위치가 감정을 결정했던 거지.
즉, 동료의 연봉 협상 결과 자체는 중립적인거고 중요한건 "우리가 설정한 기준점"이 감정적 반응을 결정한다는거야.
기준점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얼마 전에 아빠가 읽은 심리학 연구에서 정말 신기한 실험이 있었어. 사람들에게 똑같은 선택을 다르게 표현해서 제시했는데, 반응이 완전히 달라지더라.
첫 번째 그룹은
"당신에게 1,000원을 준다. 이제 50% 확률로 1,000원을 더 받을 기회가 있다. 아니면 확실히 500원을 받을 수도 있다" → 대부분이 확실한 500원을 선택
두 번째 그룹은
"당신에게 2,000원을 준다. 이제 50% 확률로 1,000원을 잃을 수도 있다. 아니면 확실히 500원을 잃을 수도 있다" → 대부분이 50% 도박을 선택
딸아, 이 두 상황의 최종 결과는 수학적으로 완전히 똑같아. 1,500원 확정이거나 50% 확률로 1,000원/2,000원이야.
그런데 첫 번째는 "얻는다"는 프레임으로, 두 번째는 "잃는다"는 프레임으로 제시했을 뿐인데 사람들의 선택이 정반대가 된 거지.
회사에서 적용한 기준점 설정의 기술
아빠가 실제로 적용해본 방법들을 솔직하게 알려줄게:
1. 연봉협상 시즌
- 일반적인 기준점: "동기들과 비교해서 어떨까?" → 스트레스
- 새로운 기준점: "이전 직장 연봉 생각하면 지금 여기에서 일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감사하다." → 감사함
이전에 다녔던 직장에서 받았던 상대적으로 적은 연봉을 생각하면, 그 과거의 나보다 더 큰 무대에서 잘 달리고 있구나 싶어.
2. 필수 참여 회식이 생겼을 때
- 일반적인 기준점: "아 또 기빨리는 비생산적인 모임이네..." → 짜증(지극히 I인 성향의 입장에서는 그래)
- 새로운 기준점: "평소에 이야기하고 싶었던 직원분이랑 인사 좀 나눠볼까" → 네트워킹 기회
(사실 아빠는 지금도 회식하면 너랑 10분도 못 놀 생각을 하니까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는 않단다. 하하)
3. 승진 발표 시즌
- 일반적인 기준점: "승진 못하면 실패한 거야" → 절망감
- 새로운 기준점: "껍데기 뿐인 직급 말고, 올해 내가 쌓은 경험과 역량은?" → 장기적 관점
승진은 기업 문화, 타이밍과 자리가 맞아야 하는 거라서, 내 성장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하게 됐어. 오히려 "지금 승진하면 내 지금 실력으로 감당할 수 있을까?"를 먼저 생각하게 되더라.
그런데 현실은 그렇게 쉽지 않더라
솔직히 말하면, 기준점을 바꾸는 건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실제로는 정말 어려워.
우리는 어려서부터 남이 정해놓은 기준에 맞춰 살도록 학습받았거든. 성적표, 등수, 남들과의 비교, 사회적 기대... 이런 것들이 우리 반응을 자동으로 결정하도록 훈련받은 거야.
특히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래. 모두가 비슷한 척도에 함몰되어 있어.
- "남들 보기에 어떨까?" - 내 판단보다 타인의 시선
- "평균이나 표준과 비교하면?"라는 기준점 - 내 상황보다 일반적 기준
- "윗사람이나 권위자가 어떻게 볼까?"라는 기준점 - 내 가치관보다 외부 시선
이런 기준점들이 자동으로 작동하면서 우리 감정을 좌우하는 거지.
매일 써먹는 실전 도구
딸아, 아빠가 매일 세팅하려고 노력하는 간단한 습관이야:
아침에 일어나서는
"출근하기 너무 싫다"(X) → "오늘 출근길 독서에서는 어떤 걸 얻을 수 있을까?"(좋은 부분 떠올리기)
기분 나쁜 일이 생겼을 때는
"지금 내 기준점이 어디에 맞춰져 있지? 다른 기준점으로 보면 어떨까?"(기준점 파악하기)
"다른 제 3자의 시선에서 봤을때,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정리해보자"
저녁에 하루를 정리하면서는
"오늘 내 반응 중에서 내가 선택한 건 뭐고, 본능적으로 나온 건 뭐지?"(회고를 통한 나아지는 연습)
실패해도 괜찮다는 새로운 기준점
아빠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기준점이 하나 있어.
바로, "완벽하게 하기" vs "배우면서 하기"
일을 하면서도, 육아를 하면서도, 이 글을 쓰면서도 계속 적용하고 있어.
완벽하게 하려고 하면 시작도 못 해. 하지만 "이번에는 뭘 배울까?"라는 기준점으로 접근하면 실패도 성장의 증거가 되거든.
너에게 전하고 싶은 것

딸아, 세상은 계속해서 너에게 온갖 기준점을 제시할 거야.
- 성적으로 너를 평가하고
- 외모로 너를 판단하고
- 직업으로 너를 분류하고
- 연봉으로 너를 서열화하려고 할 거야
하지만 기억해. 너의 인생에서는 너만의 기준점을 선택할 권리가 있어.
결과는 그냥 벌어진 결과일 뿐이야. 중립적이고, 그 자체로는 의미가 없어.
그 결과를 보고 네가 어떤 반응을 할지는 네가 정한 기준점에 달려있어.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점에 네 감정을 맡기지 마. 그건 소음이란다. 너만의 기준점을, 너 스스로 의식적으로 선택해.
남과의 비교가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하고, 완벽함보다는 나아가고 있는 그 과정에, 인정욕보다는 성장하고 있음에 집중해보는게 어떨까?
딸아, 아빠도 아직 완벽하지 않아. 여전히 가끔 엉뚱한 기준점에 휘둘릴 때가 있어.
하지만 적어도 이제는 "아, 내가 지금 어떤 기준점을 쓰고 있구나"를 알아차릴 수 있게 됐어. 그것만으로도 인생이 훨씬 편해졌단다.
네가 네 인생의 주인이 되길 바라. 남이 정해놓은 기준점의 노예가 아니라.
네 반응을 네가 선택할 수 있다는 걸 잊지 마.
사랑한다, 우리 딸.
아빠가.
외부 사건 자체가 우리를 괴롭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건에 대한 우리의 판단이 우리를 괴롭힌다.
— 에픽테토스
아빠가 미래 20세 딸에게 전하는 조언을 담은 편지를 쓰려고 합니다. 인생에서 얻은 경험을 솔직하게 다룰 예정입니다.